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내년 총선 출마를 포기하면서 정치권 복귀 시도가 무산됐다. 이 전 부의장은 오늘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출마 의사를 접겠다"고 밝혔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달 자신의 지역구였던 경남 창원 성산에 출마 의사를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으로, 2012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정계를 은퇴한 바 있다.
이 전 부의장의 출마 선언 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여당 내부에서도 "도덕성 논란으로 인한 악영향"을 우려하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전 부의장은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를 깊이 새기고 고심 끝에 결정했다"며 "정치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정계 복귀가 무산된 이 전 부의장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국가 발전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거 비리 전력이 있는 정치인들의 복귀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만큼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인 이상득의 굴곡진 삶과 유산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생애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1935년 일제 강점기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한 그는 한국 산업화의 주역으로, 또 정치인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상득은 1961년 코오롱 1기 공채사원으로 입사해 17년 만에 대표이사로 승진하는 초고속 출세를 이뤘다. 그의 경영 수완은 당시 한국 섬유산업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전문경영인 출신으로서 재벌 2세들이 주도하던 한국 기업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이상득은 이후 18대까지 6선 의원을 지내며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운영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고, 17대 국회에서는 부의장까지 올랐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당 내에서도 상당했으며, 특히 동생인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상득의 정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BBK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고, 2012년에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정계를 은퇴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명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후 그는 공식적인 정치 활동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이상득의 삶은 한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산업화 시대의 성공한 경영인이자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한국의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에 기여했다. 반면 권력과 결부된 비리 의혹은 그의 업적에 오점을 남겼다. 그의 별세를 계기로 한국 사회는 산업화 세대의 공과 과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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